난데없이 중국으로 간다니 난리가 났다. 갓난 아기 둘이나 두고 어딜 가냐. 중국어도 모르면서 등등. 하지만 마땅히 일을 찾을 수 없던 나로선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도 무모하고 어이없는 결정이었다. 일에 관해선 제대로 확인하지도 않았던데다, 더 심각한 문제는 당시의 내 정신 상태에 있었다. 예전처럼 외국물 먹는다는 들뜸에 주변의 충고나 경고 따윈 싸그리 무시하고 밝은 면만 생각하며 가선 어찌 되겠지.
잘 아시겠지만 난국에, 그리고 늦은 나이에 제 발로 찾아오는 취업 권유는 깊이 생각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런 권유엔 내가 가진 재주 중 일부만 필요로 하고, 그 필요만 충족되면 언제든지 당사자는 버려질 카드로 전락하니까.
그리고 어려서 시작한 첫 직장과는 다른 문화에 적응하는 일도 보통이 아니다. 특히 터줏대감들과 분쟁이라도 생기면, 오너는 처음엔 당신을 역성들지만 거듭된 터줏대감, 텃새, 토호의 간언이 지속되면 점차 등을 돌리게 되어 있다.
생각해 보라. 열 아가리를 어찌 당하누? 저 새끼가 낮에 딴짓해요. 그럴 리가 있나. 몇 번은 모함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가리 열 개가 돌아가며 지껄인다면? 진짜 이 세끼 문제 있나?
인간의 능력 중 더럽기 짝이 없는 걸 하나 꼽자면 함정을 팔 줄 모사의 능력이다. 짐승은 기습 공격은 가능해도 함정을 파진 않는다. 그만한 머리가 안되기 때문이다. 허나 인간은 다르다. 자신의 이익과 안전을 위해서라면 없던 일도 꾸며대고, 맛난 고깃덩이로 유혹해선 상대를 사지로 몰아넣는다.
2월의 초입에 들어선 어는 날, 난 복수비자를 받고 속옷 몇 가지만 챙겨선 항주로 날아갔다. 설레는 마음으로 도착하니 흑룡강에서 왔다는 조선족 여자애가 마중을 나왔다. 생글거리는 얼굴이 예쁘장한데 기분이 그다지 좋지 않은 건 눈에 웃음기가 없다는 것이었다.
참고로 사람을 대할 땐 눈을 반드시 봐야 한다. 다른 표정으로 페이크는 칠 수 있어도 눈빛만큼은 속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난 속으로 아차, 이미 텃새가 자릴 잡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녀석의 현지법인은 이우에 있었는데 고속도로를 경유해서 3시간 정도 걸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거참, 폴크스바겐의 중형 차 한 대가 대기하고 있고 기사까지. 살짝 나빠졌던 기분은 이내 풀리고 조금은 황량한 산들을 뚫고 난 고속도로를 질주하기 시작했다.
웅? 그런데 여기저기서 쌍라이트가 번쩍번쩍. 게다가 갓길 추월은 기본이다. 내 착각인진 몰라도 스쳐가는 대형 트럭의 사이즈가 우리의 그것들보단 훨씬 커 보였고 올린 짐들도 장난 아니게 많아 아주 위험해 보였다. 점점 내 입에선 '어. 어.'하는 비명 아닌 비명이 이어졌는데 난데없는 끼어들기, 칼치기, 대형 차들의 초법적인 앞지르기 등등 상상 가능한 형태의 모든 불법운전이 온 도로에 가득했다.
그러나 정작 날 기절초풍시킨 건 내가 탄 차였다. 한 장면이라도 놓치기 싫어 창밖을 보고 있는데 이우라는 푯말을 휙 지나가는 게 아닌가? 난 여자에게 지나온 것 아니냐, 그러자 중국 말로 기사에게 모라 모라. 갑자기 차를 갓길에 세우더라고. 사이드 미러로 뒤를 살핀다 싶더니 갑자기 유턴을 하는 게 아닌가?
헉..... 그리고선 갓길로 역주행해서 달리는데 정주행하는 차들이 난리다. 쌍라이트 번쩍번쩍. 이눔은 뭘 잘했다고 지눔도 번쩍번쩍. 급기야 화가 난 이게 도대체 뭐냐, 다음 인터체인지에서 빠져나가 되돌아오면 되지 않느냐. 여자 왈...
'놔두세요. 사고 나면 지가 책임지겠져..'
난 분명히 기억한다. 그 운전사 놈이 갓길에서 쉬고 있던 경찰차를 본체만체 지나쳤고 그런 우리를 빤히 쳐다보던 경찰의 눈동자를. 그건 마치 니가 죽지 내가 죽냐란.. ㅎㅎ
이우에 들어서자 더욱 골 때리기 시작했다. 혹시 뤽 베송 감독의 '택시'란 영화를 본 적이 있는지. 이건 그 택시보다 더 지랄 발광이었다. 당시 중국엔 자전거 전용도로가 있었는데 어지간한 우리 차도 넓이였다. 신호에 잡히니 이넘은 거길 들어가서 갑자기 2차선으로 뛰어들다가 1차선을 넘어 반대편 차선까지 점유한 채 질주. 맞은편 차는 쌍라이트만 번쩍일 뿐. 그러고 보니 다들 그리 운전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사고만 나지 않을 것 같으면, 그리고 인도만 아니라면 어디든 밟아대는 것이었다.
여자는 내 표정을 봐가며 킥킥 웃는데 대단히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거 만만찮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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