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이야기/길 위에서 묻다

물욕

운산티앤씨 2018. 3. 17.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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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uce Springsteen - Streets of Philadelphia


가끔 저장강박증에 대한 기사를 봅니다. 그냥저냥 아무 쓸모없어 보이는 물건을, 대책 없이 쌓아두다 두다 결국엔 집안 전체가 쓰레기장으로 변하고 마는. 일종의 정신병이라고 하더군요.

요즘 폐지 값이 똥값이라고 하더군요. 1Kg에 80원? 고물상 구조가 넝마주이 -> 소매 고물 -> 중도매 -> 대도매를 거쳐 재생 공장이나 수출로 나가는데 꼭 이 패턴은 아니더라도 과정을 거쳐도 100-120원 정도 될까요? 그런데도 연세 드신 분들은 밤낮 구분 없이 열심히 가져가시니 청소하시는 분들 노고를 덜어 드린다고 해야 하나요?

처음 오디오를 접했을 때, 아니 정확히는 오랜 기억을 끄집어내선 좋은 소리를 듣고자 쏘다니고 다니며 놀란 건 좀 만진다 싶은 분의 자택을 방문하면 너나 없이 마루 가득, 한방 가득, 심지어 어떤 분은 누울 자리 빼곤 오디오가 빼곡했습니다. 속으론 '돌지 않고서야..'라며 혀를 찼지만 불과 1년이 지나지 않은 시점에 마눌이 폭발하고 말았습니다.

'오디오 들고나가든지, 이혼하든지..'

결국 그 많은 오디오 (1톤 트럭으로 가득)를 끌고, 직장 따라 전국을 헤매다 결국 월세를 얻어 재워두었는데 이게 바로 이 사업의 시발점입니다.

세 가지 예를 들었는데 공통점이 보이십니까? 소위 말하는 저장 강박증의 각기 다른 모습들입니다. 이걸 두고 성인들은 물욕이라고 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다른 이에게 피해를 주지 않거나 주더라도 지극한 제한적인 소박한 물욕입니다.

하지만 이 물욕이 권력이나 돈을 향하는 순간, 더할 나위 없이 날카로운 검으로 변하고 맙니다.

혹시 야구 방망이를 힘차게 헛방으로 날린 적이 있는지요? 온몸이 돌아가면서 그 묵직한 끝이, 재수 없으면 내 얼굴을 갈깁니다.

과한 물욕이 바로 이 모양입니다. 나도 오디오에 미친 이들도, 집안 가득 쓰레기 쌓아둔 이들도 내심으론 이래선 안되는데 하면서도 멈출 수가 없습니다. 권력이나 돈을 제게로 쌓아올린 이들도 마찬가지. 정상에 서니 고독하다, 허탈하다, 허망하다라곤 하지만 멈추질 못하고 꾸역꾸역. 종내에 탈이 나서 전부 토해내거나 털리거나.

새로운 디자인, 낯설지만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기기들을 이쁘게 전시해 놓고, 차 한잔 앞에 두고 흘러나오는 그 소리를, 한밤중에, 은은한 불빛과 잘기는 건 그야말로 고상한 취미이고 삶의 윤활유이며 욕 못지않은 동기부여입니다. 하지만 추할뿐, 그리고 타인을 불편하는 하는 그 이상이 되고 맙니다.

나야, 영리를 목적으로 하니 아무리 명기라 한들, 새롭다 한들 돈으로 바꿔 가솔들 입에 풀칠함이 목적이니 그닥 미련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아닌 분들이 왜 그리들 아귀다툼을 하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입니다.

이런 분들에게 쌓인 오디오들은 지난 시간의 히스토리일 순 있지만 현재는 미스터리이며 장래는 디재스터 (Disaster/재앙) 일 뿐입니다. 물론 사고팔며 용돈벌이가 목적이라면 몰라도.

연전 어느 집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고인이 되신 물건이 있는데 좀 사 가라고. 원래 국내에서 물건을 사질 않았지만 워낙 간곡하셔서 갔더니 JBL Century 100, 산수이 턴테이블, 마란츠 중저가 리시버 외에 이름도 기억하기 힘든 기기들이 잔뜩.

딴엔 고인의 유품이니 이렇게 처분하지 마시고 아들이나 손자에게 물려주시지요? 손사래를 치며 다들 저 거지 같은 쓰레기를 빨리 없애라고 성화랍니다.

나에게 필요 없다면 한갓 쓰레기에 지나지 않을 물건에 집착하지 마십시오. 단 한 장의 엘피도 당신이 갈 땐 같이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오디오가 아닌, 돈이나 권력이라면 정점에서 내려올 준비를 하며 그동안 나 때문에 힘들었을 이들에게 나눠 주십시오. 입장보다 화려해야 하는 건 퇴장입니다.

지금 욕을 만 바가지 처먹고 있는 일단의 가족들, 그렇게나 많이 필요했을까. 뒤로 해처먹으며 거둬들인 든의 일부라도 나눴다면 저 지경까진 가지 않았을 겝니다.

예나 지금이나 인간은 종말에 이르러서야 삶이 일장춘몽임을 깨달으니 그야말로 먹이사슬의 최상위 하등동물임은 분명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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