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빈티지의 장점. 해마다 평가를 하면 자산 가치가 오른다. ㅋ
어제 한겨레에서 아직도 결론이 나지 않은 숙명여고 쌍둥이 사건에 대해, 그간 우리가 알지못했던 사실들을 나열한며 과연 정당한 재판이 이루어지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담은 기사를 냈더군요. 물론 댓글엔 이미 다 알려진 마당에도 인정하지 않는 아비와 딸들의 뻔뻔함에 대한 지독한 욕설이 대부분이고 더하여 이번엔 전교조에 대한 원망까지 가득하더군요.
하지만 난 오래 전부터 이런 시스템의 도입에 결정적인 역할을 전교조가 했건 말건, 과거 우리가 알던 사지선다형 시험 시스템이 더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까지 늘어 놓으면 끝도 없을테고!
먼저 이 일에 대해 왜 우리가 그렇게 분노해야 하는지 묻고 싶습니다. 나 역시 또래의 자식을 가진 사람이지만, 설사 사실이라 해도 이렇게 까지 혹독하게 한 가정을 파괴해도 되는지, 개인의 인격을 말살해도 되는지는 진정 의문입니다. 따지자면 이런 사소한 잘못까지 처벌하지 않고 넘어갔으니 나라가 엉망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냐, 맞는 말이긴 한데 현재의 개판은 이 아이들이나 그 아비때문이 아니란 점은 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하지 않을까요?
우린 이 건이 터지자 말자 당사자 중 일방, 즉 피의자로 전락한 그 집안 식구들의 합리적인 설명 한번 변변히 들어 본 바가 없습니다. 한겨례의 기사에서도 나왔듯이, 그리고 내가 본 그간의 증거들 중에 범행을 입증하는 결정적이고도 직접적인 증거는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어떤 문제의 오답을 똑같이 적을 확률은 로또보다 어렵다, 혹은 그 학교에서 단기간에 공부해서 선두에 나서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는 증언. 불가능도 아니고 불가능에 가깝다는 말은 가능할 수도 있다는 말로 나에겐 와닿습니다.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그간 나온 증거에 대한 경찰과 검찰의 설명을 꼭 읽어 보십시오. 아비가 시험지를 훔쳤다, 그리고 건내줬다는 증거는 아예 없습니다. 그럴만한 여건이 조성되었었고 시험지를 훔칠 수 있는 시공간에 있었다는 정도입니다. 또한 애들이 컨닝 페이퍼를 보다가 적발되었다는 증거도 없습니다. 고작해야 논란이 되는 메모인데 이 부분에 대해 합리적인 설명이 가능한 가족들의 입장은 이제사 겨우 흘러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예를 들어 보죠. (예전과 비슷하게 읊었습니다. ㅋ)
ㄱ과 ㄴ은 존나리 사이가 나쁩니다. 그리고 금적적인 문제도 좀 있었고요. ㄱ은 폭력적인데다 과거도 좀 있는 편이죠. 어느 날 ㄴ이 무참하게 살해 당해 길거리에 버려진 사건이 생겼습니다. ㄱ은 당연히 프라이머리 서스펙트가 되겠지요. Primary suspect. 제 1 용의자.
하필 기삿거리를 찾던 모 기자의 눈에 띕니다. 오라, 이거 관심 좀 받겠는걸. 그리곤 냅따 글로 지릅니다. ㄱ과 ㄴ의 괴거 은원, 채무관계 등등. 경찰이 수사에 들어가자 ㄱ에겐 불리한 정황증거들만 나옵니다. 당일의 행적에 대해서도 횡설수설, 입증해줄 사람도 없습니다. 수색영장을 발부받아 집안과 금용조회를 하자 범행 전 등산용 칼을 샀던 기록과 함께 사건 당일 집 앞에서 옷가지를 불에 태우더란 목격담까지 나오네요.
신이 난 기자는 거봐란 식으로 소설을 씁니다. 이미 그런 원한관계에 있었고 당일 행적도 모호한데다 칼까지 샀다더라. 피해자도 칼에 찔려 죽었는데 당연히 그 칼이지. 그리고 불우했던 피해자의 과거가 주마등처럼 보이게끔 잘도 지껄여 댑니다. 또 다른 결정적인 증언이 나오죠. 사건 당일 현장 근처에서 피의자가 급하게 달아나는 모습을 보았다. 빼박입니다. 정황 증거가 너무도 명확한데다 도주의 우려가 있으니, 그리고 강자에게 당한 약자의 설움을 익히 동정하는 여론의 질타에 경찰은 구속 영장부터 청구합니다.
이젠 다 짜놓은 프레임 안에서 내부 인테리어를 근사하게 해줄 자백만 남았군요. 예전엔 고문으로도 가능했지만 요즘은 가둬놓고 얼르는 모양입니다. 자백하면 10년이야. 모범수로 조기에 나올 수도 있고. 너 뻗대다가 유죄판결 받으면 무기야, 인마. 그러니 다 말해라. 정상참작이란 것도 있잖아? 그날따라 디진 눔이 널 갈궈서 우발적인 찔렀다로 하면 어때?
설마 이렇게 까지 하겠습니까만은. 여하튼 이미 피의자는 언론상 확실한 살인자가 되었고 이제 그 광풍은 그 집안까지 들이닥칩니다. 자식 잘뭇 두었다는 누명을 뒤집어쓴 부모의 신상과 아무 관계도 없는 마누라까지 조림에 돌림빵놓아가며 미친듯이 잘알들을 해댑니다.
그러나 1심에서 유죄였지만 2심부터 이상한 소리들이 흘러 나옵니다. 피해자의 몸에 난 상처는 피의자가 구입한 과도로 생길 수 없다는 변호인의 반박이, 과학적인 실험결과와 함께 튀어 나오죠. 물론 피의자는 끝까지 아니라고 부인을 하는 상태고. 더하여 당일 도망가는 피의자를 보았다는 증언도 힘을 잃습니다. 다시 생각해 보니 뒷모습이 닮았다는 거지, 그 사람이란 보장은 못하겠다.
이쯤되면 다들 머쓱해집니다만 아무도 사과하지 않습니다. 날이 갈수록 관심에서 멀어지게 강제합니다. 즉 그걸 터뜨린 이도, 욕을 한 이들도 얼릉 사회적인 관심권 밖으로 밀려나야 덜 양심의 가책을 받으니까. 그러나 사실 미안해 하지도 않을 겁니다. 결국 보다 못한 한 정론지에서 이런 부도덕한 기사화의 과정과 몰지각한 네티즌의 무분멸한 댓글 횡포를 고발하지만 아마 이런 댓글이 베스트로 올라가지 않을까 싶네요.
'평소 처신을 똑바로 했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 거 아냐.'
참 조까튼 양심들이고 대책없는 하빠리 따라지 민심들입니다.
이 집안 식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통상 거부할 수 없는 정황 증거로 구속을 시키고 대강 빵에서 굴리면 시인을 합니다. 더 큰 치도곤을 당하기 전에 말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아니라고 합니다. 이 일로 애들까지 소년범으로 처벌받고 아비는 더 오랫동안 철창신세를 질 수 있는데도. 다들 정황상 범인이 맞다고 하면서 정황상, 그리고 증거까지 내면서 반박하는 이쪽 입장의 말엔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습니다. 이들의 주장도 우리 입장에선 명확한 무죄 추정의 정황 증거가 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시계를 1983년으로 되돌려 봅니다. 1982년 입시에서 기적 같은 일이 생겼습니다. 내신 등급 최하위 (15등급이었나?)였던 학생이 학력고사에서 300점대를 넘기는 괴력을 발휘합니다. 당시엔 스마트폰도 없었고 지금처럼 쪽집게 강사도 없었습니다. 컨닝은 원래 불가능하죠. 그렇다면 겐또냐?
사연인즉 개망나니로 살다가 1년을 앞두고 정신을 차렸답니다. 죽자고 공부해서 결국 그 결과를 만든 거죠. 이런 전설은 우리 때 꽤나 많았습니다.
자랑은 아니지만 내 경우를 말해 보겠습니다. 4등급이었을 겁니다. 65명 정원에 10-15등 사이라면 거둘 수 있는 과실이죠. 난 당시 모교의 전설 중 하나였습니다. 왜냐하면 공부 시간에 머리를 든 적이 없었거든요. 게다가 담배와 술로 학교를 몇번이나 들썩거리게 한데다 요즘 말로 10% 부족한 일진 정도였으니까. (애들 돈 뺏고 괴롭히는 종류가 아닌 그런 종류와 맞서는 달건이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하도 자빠져 노니 어느 날 모친께서 눈물로 호소를 합디다. 니 형은 저리도 잘 나가는데 이러다가 너 건달되면 내가 제명에 못 산다고. 하여 결심을 하고 일기에 적었네요. 뭐라고? '이제부터 공부해야지.' 그게 학력고사 3개월 전이었습니다. 우리 때도 모의고사는 있었습니다. 그게 학력고사에 그대로 투영된다고요? 조까는 소리입니다. 신경써서 시험보면 전교 3등, 대충 그리면 200등. 내가 거둔 최악의 성적은 반에서 54등이었다고 기억합니다.
하지만 난 놀라운 성적을 거두었고 요즘 1등급 애들도 가기 힘들다는 대학으로 진학했습니다. 다시 한번 전설로 등극하는 순간이었지요. 하지만 아무도 이의를 제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시험지를 빼돌렸을까요? 아니면 컨닝을 했을까요? 그건 애당초 불가능하고 언급했습니다. 그렇다면 겐또일까요?
영어와 국어에서 각 1문제 틀렸고 수학에선 36점을 받았습니다. 이 세과목만 해도 134점이고 체력장 20점이 더해지면 154점. 나머지 정말 막 찍어도 200점은 넘지요. 하지만 그날 너무 애를 썼는지 암기과목에서 그다지 점수가 나오지 않았거든요. 아마 원래 실력대로 암기과목 점수까지 나와줬다면 300점대 였을 겁니다. 그때 서울대 커트라인이 아마 285점이었을걸?
다들 인정하고 싶지 않을 겁니다. 나도 못하는데 니가 무슨 재주로. 그러나 내 경우와 같이, 내가 했으니 너도 할 수 있어란 일부의 경험담은 파묻혀야 할 겁니다. 한편 난 이 건에서 현행 시스템을 붕괴시키고 과거로 회귀하고자 하는 이상한 냄새를 강하게 맡습니다.
먄약에 말입니다, 2심에서 무죄가 나온다면? 그리고 최종 무죄가 확정된다면 여러분들은 이 가족에게 어떤 보상을 하실 생각이십니까? 보나마나 썩어빠진 사법 시스템을 개혁해야 한다고, 판사들 욕이나 떠벌리겠지만 유무죄의 판단은 증거로만 이루진다는 걸 아십니까?
대상없는 분노의 폭발이 왜 여기에서 심한지 모두가 반성해야 하며 만약 무죄로 판명된다면 성금이라도 걷어 이 가족들의 피눈물을 보상해야 하지 않을까요?
질투와 허영, 이기심으로 점찰된, 기상천외한 이 마녀 재판이 안타깝습니다.
------------------
몸 풀기도 끝났으니 이젠 장사 좀 해볼까요? ㅎㅎ
'세상 이야기 > 길 위에서 묻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재다능이 성공의 키는 아니다. (0) | 2019.06.30 |
---|---|
다재다능이 성공의 키는 아니다. (0) | 2019.06.30 |
군대 문화부터 바꿔야 사람 사는 세상이 됩니다. (0) | 2019.06.30 |
그 입 좀 다물라~~ (0) | 2019.06.22 |
골목 상권을 침범하지 마세요...^^;; (0) | 2019.06.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