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 아는 노래도 한계가 있다. 그러다 보니 되돌이표처럼 같은 곡을, 알면서도 자꾸 올린다.
밥에 내리는 눈은 추위보단 따사로움과 풍요로움이다. 어쩌면 그 두가지 감정을 느끼는 건, 그 하얀 눈이 내 더럽혀진 시간과 공간을 덮어주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하여간 아침 내린 눈은 이제 다 녹아 없어졌지만.
눈은 마침내는 사리지고 만다는 사실,
그리고 때가 되면 다시 찾아온다는 사실, 그리고
언제나 한결 같다는 사실로 부터 난 오래 전 기억을 꺼낼 수 있으니 어찌 좋아하지 않겠나.
그래서 이 노래도 너무도 좋아한다.
원래 이눔은 트로트가 제격일텐데... ㅎㅎㅎ
갑자기 삶이 몹시 지겹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삶이 주는 무게에 짓눌려서 일 것이다. 하지만 묘한 건 같은 일을 두고서도 누구는 무게감을 느끼지 못하겠다고 하는데, 또 다른 누군가는 숨을 쉴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난 생각했다. 우리 삶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동종의 이벤트들은 사실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든 일어날 수 있지만 늘 다른 얼굴을 갖고 있어, 실제 전혀 무게감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차이가 나는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난 늘 기억하려 애를 쓴다. 나와 네가 같지 않음을. 측은지심, 동감, 공감은 내가 네가 되려 애를 쓸 때만 나올 수 있는 값비싼 감정이다.
하여 누군가 너를 이해한다, 안타까워 할땐 고마워할 줄 알아야 한다.
혹시 주변에 아무도 없다고 느끼는가?
그건 그들이 투명인간이 아니라 네가 투명인간을 자처했기 때문이다. 인간만큼 같이 하는 이들에게 관심을 주는 동물은 없다.
즉 네가 외로운 건 그들이 주는 시선을 곡해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그들이 보는 시선은 정면인데 넌 그것이 싫어 비껴 서 있는 것이다. 그래서 넌 보이지 않고 넌 그들이 원하는 곳에 존재하지 않으면서도 그들을 원망하는 것이다.
누군가의 삶이 의미는 홀로 존재함때문이 아니라 공존을 인정할때 비로소 생기는 법이다.
나의 변치 않는 관 (觀)을 들자면 '사랑은 뭔 얼어죽을 사랑이냐'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비난하는 사랑은 지극히 육덕진 사랑이다. 남녀가 교합하는 행위는 사랑이 아니다. 그건 수단이고 목적은 둘 사이의 감정적인 결합이며 약속이며 항상성이다.
하여 난 사랑을 함부로 입에 올리지 않는다. 궁극의 목적과 도달하는 수단을 혼동하지 마라. 혼동하니 사랑이 아프다고 개소리하는 것이다.
촌스럽기 짝이 없는 노래지만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순수함이 있어 난 즐겨 듣는다. 이건 마치... 사막 속에서 찾은 우물과도 같더라.
난 아닌데.. 아니면 말고...
들녘을 노랗게 물든 유채의 행진은 제주에만 있었던 건 아니다.
낙동강 똥물 옆에도 있었다.
말인즉 꿈은 어디서건 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주장하고픈 것은
'Fate can't make an human but the human can make the fate.'
운명이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운명을 만드는 것이다.
맞나 모르겠다만은. ㅎ
주어진 명제는 네가 살아 숨쉬는 건 사실이니 그 사실에만 충실하면 된다는 것이다. 즉 풀 한포기 달랑난 정원 혹은 점하나 찍힌 도화지가 네 인생이고 남은 여백은 알아서 채워야 한다.
그림을 그리느냐, 악몽을 그리느냐는 네 손에 달렸다.
시간은 사람 앞으로 달려 와서 뒤로 흘러 가는 건 지당하다. 그렇다면 네가 눈을 뜨고 앞을 보는데 왜 다가오는 것들을 볼 수 없다는 말인가.
혹시 맞아 아플까봐 눈을 감거나 피하는 건 아닌가? 당당히 맞서고 싸워 이겨라.
삶이 연극이었는지는 네가 삶의 주인공이었을 때 비로소 알게 된다. 주인공이 시작하고 주인공이 끝을 내니 당연하지 않은가? 조연따위에겐 어떤 것도 알려주지 않는다.
넌 주연이냐 주연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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