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이야기/Rolling Stones

기대되는 한가위 흐흐...

운산티앤씨 2018. 9. 13.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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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y Williams - (Where Do I Begin) LOVE STORY 1970 (High Quality)


아주 오래전, 그러니까 내가 8살 무렵 명절 때의 일이다.

'공부는 잘해? 공부 잘하고 부모님, 선생님 말씀 잘 들어야 착하고 나중에 훌륭한 사람이 된단다.'

여기엔 이의가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네 라고 답을 해야 내 호주머니가 두둑해짐을 미리 귀띔을 받았으니까. 그리고 이 레퍼토리는 고등학교까지 이어지죠.

'그래 공부는 잘해? 대학은 어디 갈 거야? 뭐 전공하려고? 에이, 그거 갖고 밥이 묵겠나? 정 가고 싶으면 공무원 준비나 해라.'

이로선 역사를 전공하겠다는 내 포부는 무참하게 깨갱하고, 경영학으로 경로를 이탈하게 됩니다.

'여자 친구는 있냐? 뭐 하는 애야? 부모님은? 얼굴 이뻐봐야 소용없다. 그거 다 헛방이야. 여잔 착하고 살림 잘하면 된다고.'

그 말이 맞나 싶어 정말 착한 애를 사귀었더니...

'하고 많은 여자 중에 그런 애랑 사귀냐. 너무 속이 없어 보이더라. 맹하니.'

이쁜 여잔 여시 같다, 나중에 꼴값을 한다, 골이 빈 것 같아 보인다. 옷 입은 게 그게 뭐냐? 트집을 잡다 잡다 나중엔 다시 착한 아이 신드롬으로 돌아갑니다. (우리 부모님이 아닌, 전혀 내 인생에 영향을 줄 형편이 아닌 자들의 간섭.)

그리고 취직을 하고...

'애인 있어? (뭔 군대도 아니고.)'
'결혼은 언제 해? (니가 왜 그걸 궁금해 하냐고?)'

이건 뭐 당연한 사내 인사이고 안부이며,

'회사 어디 다녀? (친척이니 물어볼 순 있지) 봉급은? (근데 이건 쫌..) 돈은 좀 모았나? (남의 곳간 사정은 알아서 뭐 하려고?) 결혼할 여잔 있어? (소개나 해주면서 묻든지) 회사 전망은 어때? (내가 사장이냐?)'

이건 명절 친척들 안부니 거참 뭐라 하기도 그렇고.

좀 세월이 흘러 여전히 총각이니..

'야, 너 뭔 문제 있냐? (새벽에 잘만 선다, 이 씨불늠아) 여자 없어? 소개해줘? (그러고선 회계부 돼지 같은 년을 들먹이며 박장대소하니 그 아가리에 똥을..) 그 나이에 여자도 없이 그게 뭐냐? (넌 그리 잘나서 등신 같은 뇬 델꼬 사냐?) 예전엔 나이가 있어도 떠꺼머리 총각이여, 어른들 노는데 끼지 마. (술 먹자고 부른 건 너다, 이 개넘아.)'

'와 결혼 안 하고 그라고 있노? 어무이 아부지 애 먹일라고 작정했나? (헉? 이건 또 무신 소리고?) 얼릉 결혼해서 부모님께 효도해야지. (뭔 소리여? 결혼이랑 효도랑 무슨 상관인데?) 참한 색시 데리고 와서 어른들께 인사도 시키고 애도 둘은 낳아야지. (거참 밥도 되기 전에 국부터 한 술 뜨는 소리를.)'

그리고 결혼을 하니..

'애는? 몇이나 낳을 거야? 왜 애가 안 생기지. 니가 문제냐, 제수씨가 문제냐? (니가 내 형이냐, 난데없이 제수씨는. ) 밤 일에 문제 있어? (헉..) 애는 빨리 낳아야 니가 고생을 안 해. (이 말은 맞습니다. 어차피 가질 거라면)'

친척들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언제 대리 되냐? 너 혹시 사고 쳐서 승진 물먹었냐? 봉급이 그게 뭐냐고? 그걸로 집이나 사겠어? 그러게 내가 진작에 사시나 행시 보라고 했잖어, 임마... (이후 명절 때마다 무상 노가다하는 마누라 뒷통수 보며 좌불안석입니다만)'

아들을 얻었습니다.

'딸도 하나 낳아야지? 혼자는 애가 외로워 해. (니미 그걸 왜 니들이 걱정하느냐고?) 집은 언제 살 거야? 전세는 얼만데? '

휴.. 참 오랜 세월 동안의 참견들입니다. 그리고 딸이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이번엔 우리 가족들 세워두고 오래전 내가 받았던 질문이 이어지고 애들은 애들대로, 난 나대로 답변을 해야 합니다.

아직은 오지 않았지만 머잖아 이런 질문들이 쏟아지겠지요?

'아들래미, 딸래미 대학은? 직장은? 며느리 혹은 사위는 언제쯤? 손주는 언제?'

그리고 손주가 태어나면 같은 질문들이 반복되겠지요. 살아 있는 동안 피할 수 없는 스무고개 놀이들입니다.

같이 사는 사회이니, 얼굴을 마주칠 수밖에 없고 달리, 딱히 할 말이 없으니 물어보겠거니, 혹은 대수롭지 않게, 대범하게 넘겨야지 뭘 그리 까탈스럽고 민감하게 대응하냐?

하지만 어떤 질문들은 질문받는 이에겐 마음의 상처가 될 수 있습니다. 정말 고자면 어쩌시려고? 정말 씨 없는 수박이면? 애새끼가 꼴통이라 말도 못 하고 속앓이 하고 있다면? 보증 잘 못 서서 빚이 산더미라면? 능력 부족으로 계속 승진에서 물을 먹고 있다면? 혹은 강제 퇴직 상태라면?

친근을 핑계 삼아 남의 생활을 들여다보려는, 타인에 대한 배려 없음과 경계선 모호한 관계 설정에 기반을 둔 전통적 관음증은 즐거워야 할 명절을 망치는 첫 단추입니다. 이따위 질문 빼고, 정말 물어볼 말이 없다면 만날 필요도 없는 관계가 아닐까요?

모쪼록 즐거운 명절 보내시고...

이번 명절엔 나도 조카눔들에게 당당하게 질문하려 합니다.

'공부 잘하냐? 대학은 정했냐? 취직은 언제 하려고? 장남인데 무책임하구먼. 대리는 언제 되냐? 봉급은 얼마고? 모아둔 돈 좀 있어? 너 아버지 생각하면 크게 성공해야지, 그래 갖구 되긌냐?'

ㅎㅎㅎㅎ 은근히 기대됩니다. Payback time 이...